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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박씨 (順天朴氏)

박현철 2006. 1. 3. 22:50
순천 박씨 (順天朴氏)


1> 시조 : 박영규[朴永規]

2> 본관 및 시조의 유래

순천(順天)은 전남 남동쪽에 위치한 지명으로 백제시대에 함평군이었으나 신라때 승평으로
고쳤으며, 고려때에 승주로 하였다가 정종때 승평군이 되고, 조선조에 도호부가 되었으며,
여러차례 변천을 거쳐 1895년 순천군으로 개칭되고, 1949년 순천시가 되고
순천군은 승주군으로 개칭되었다.

순천박씨(順天朴氏)의 시조 영규(英規)는 신라 제54대 경명왕의 일곱째 아들인 강남대군
언지(彦智)의 아들이다.
문헌에 의하면 그는 후백제 견훤의 사위로 태조 왕건을 도와 고려 창업에 공을세워 개국공신에
책록되고 좌승(左丞)에 올라 승주군에 봉해졌으며,
후손 난봉(蘭鳳)은 평양(순천의 옛지명) 부원군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영규(英規)를 시조로 받들고 본관을 순천으로 삼아 세계를 계승하여 왔으나,
그 후의 계대가 실전되어 고려 충숙왕때 보문각 대제학을 지낸 숙정(淑貞)을 1세조로
계대(繼代)하고 있다.

충절의 가문으로 알려진 순천박씨는 1세조 숙정이 슬하에 아들 5형제를두어 가문이 크게
융성하기 시작하였는데, 맏아들 원룡(元龍)은 시랑을 역임했고, 막내 원상(元象)은 공조전서를
지냈으며, 문하시중에 오른 천상(天祥: 원룡의 아들)의 아들 가흥(可興)·가실(可實)·가권(可權)
3형제가 크게 현달했다.

조선조에 와서는 가흥의 아들 석명(錫命)이 태종때 명신으로 유명했다
그는 정종, 태종과 더불어 이불을 같이 덮고 잤을 만큼 절친한 사이였으며, 고려 공양왕의
아우인 왕우(王瑀)의 사위이기 때문에 조선이 개국되자 화를 피하기 위해 7년간이나
은거하다가 태종 때 좌명삼등공신으로 평양군에 봉해졌다.
석명의 손자가 세조때 이시애의 난을 토평했던 중선(仲善)이며, 목사 안생(安生)의 아들
중림(仲林)은 대사헌을 거쳐 이조판서에 올랐으나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사육신(死六臣)과
더불어 단종복위를 도모하다가 발각되어 아들 팽년(彭年), 인년(引年), 기년(耆年), 대년(大年),
영년(永年) 5형제와 손자 헌(憲)·순(珣) 등과 함께 참화를 당했다.

1434년 알성문과에 급제한 팽년은 성삼문과 함께 세종의 극진한 총애를 받았으며,
세조때 형조참판에 올라 사육신과 함께 단종복위를 도모하다가 탄로나 화를 입었다.
국문(鞠問)을 하던 세조는 팽년의 재주를 아껴 "만일 네가 나를 섬기면 살려 주겠다"라고
회유했으나 그는 "나는 상왕의 신하이지 당신의 신하가 아니오"라며 이를 거절하였다.

세조가 사육신들을 옥에 가두었을때 김질로 하여금 술을 가지고가서 옛날 태종이 정몽주에게
불렀던 하여가(何如歌)로 마음을 떠보려 하니 성삼문은 정몽주의 노래로 대답하였고,
팽년은 아래와 같은 시로 답했다.

<금생여수(金生麗水)라 한들/ 물마다 금이 나며/ 옥출곤강(玉出崑崗)이라 한들/
뫼마다 옥이 나랴/ 아무리 여필종부(女必從夫)라 한들/ 임마다 쫓을소냐.>

팽년의 일가가 멸족될때 둘째 아들 순(珣)의 아내 성주이씨가 임신중이었는데 나라에서는
이 뱃속에 든 아이까지도 아들일 경우 죽이라는 선고를 내렸다.
교동현감 이질근의 딸인 이(李)부인은 친정인 경북 달성군 하빈면 사동(일명 못골)에 내려가
살다가 아이를 낳으니 아들이었다. 유일한 이혈손을 보존하기위해 고심하던 중 마침
하녀가 딸을낳자 서로 바꿔 박비(朴婢)라는 이름으로 자라났다.
이 아이가 장성한 후인 성종때 순(珣)과 동서지간이던 이극균이 경상도감사로 내려와 울면서
자수를 권고시키자 16세의 소년은 한양으로 달려가서 왕에게 팽년의 자손임을 고했다.
성종은 기뻐하면서 특사령을 내리고 이름도 일산(壹珊)으로 고쳐주었다.

중종반정의 주역인 원종(元宗: 중선의 아들)은 영의정을 지냈는데 무과출신으로 영의정에
오르기는 신경진(평산신씨 신입장군의 아들)과 함께 역사상 두사람 뿐이다.
그는 신장이 9척이며 풍채가 의젓하였고, 월산대군과 윤여필의 처남으로 구속됨이 없었고
영웅 기질이 짙은 무인이었다고 한다. 그의 누이가 연산군에게 몸을 더럽혔을때 이것이 항상
원한에 사무쳐 성희안, 류순정 등과 함께 연산군을 폐하고 반정을 단행한 동기가 되었다고한다

그밖의 인물로는 광해군때 대사성과 대사간을 지내고 폐모론에 반대했다가 삭탈관직된
이장(而章)과 숙종때 왕자의 스승을 지내고 손재집(遜齋集), 진호문답(晋湖問答),
나소판무(羅疏辨誣) 등의 저서를 남긴 광일(光一: 상현의 아들)이 유명했으며, 임진왜란 때
용맹을 떨쳤던 이현(而絢)의 아들 영서(永緖)는 인조때 이괄의 난을 평정하다가 황주의
신교에서 죽음을 당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순천박씨(順天朴氏)는 남한에 총 18,296가구,
75,88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 집성촌

충북 청원군 강서면 신성리, 비하리
경북 군위군 고로면 인곡동
충북 청원군 미원면 가양리, 오창면 각리
경기도 남양주군 와부읍 도곡리
전북 정읍군 정우면 장학리
경기도 평택군 팽성면 석근리
전남 보성군 벌교읍 고읍리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귀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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